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일상은 ‘고쳐 쓰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오늘은 '수리 문화'가 사라지고 '버리는 문화'로 바뀐 사회상에 대한 글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고쳐 쓰던 시절 ― 생활 속에 스며든 ‘수리 문화’
TV가 고장 나면 동네 전파사를 찾아갔고, 구두 밑창이 닳으면 수선소에 맡겼습니다. 가전제품은 비싼 자산이었고, 옷이나 가구도 웬만하면 오래 두고 쓰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배경에는 자원의 부족, 경제적 여건, 그리고 물건을 아끼고 보존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산업화 시기에는 물자가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수리 문화’는 생활의 지혜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낡은 라디오를 직접 분해해 고치던 모습이나, 어머니가 헤진 옷을 기워 입히던 기억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일 것입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물건을 고쳐 쓰며 정을 붙이고, 그 과정에서 생활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문화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또한 ‘수리’라는 행위 자체가 단순한 기술적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를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동네의 수리점 주인은 이웃과 소통하며 단골을 만들었고, 주민들은 고장 난 물건을 맡기며 인간적인 신뢰를 쌓았습니다. 물건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는 기억과 애착의 일부였습니다.
‘버리는 문화’로의 전환 ― 값싼 대량 생산과 소비 사회의 그림자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수리 문화’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버리는 문화’입니다. 고장 난 물건을 고치는 대신 새것을 사는 것이 훨씬 더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대량 생산과 저렴한 가격 때문입니다. 글로벌 제조업이 발달하고 생산 단가가 낮아지면서, 웬만한 전자제품이나 생활용품은 수리비보다 새 제품을 구매하는 비용이 더 저렴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휴대폰 액정 수리를 맡기면 비용이 신제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소비자는 굳이 수리를 선택하지 않고 새 제품을 사는 쪽을 택하게 됩니다.
또한 현대의 제품들은 과거처럼 ‘고쳐 쓰기’가 쉽지 않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부품이 일체형으로 제작되어 분해가 어렵고, 제조사가 의도적으로 수리를 제한하기도 합니다. 이를 흔히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라고 부르는데, 제품의 수명을 의도적으로 짧게 만들어 소비자가 더 자주 교체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입니다.
여기에 ‘소비는 미덕’이라는 사회 분위기 역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새것을 빨리, 자주 소비하는 것이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고쳐 쓰는 습관은 낡고 불편한 방식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최신 제품을 소유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나 트렌드를 상징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결국 수리점은 점점 문을 닫고, 고쳐 쓰던 문화는 기억 속 풍경으로만 남아가고 있습니다. 대신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물건은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다시 ‘수리 문화’를 꿈꾸며 ―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선택
그러나 ‘버리는 문화’가 안겨주는 문제점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쓰레기 매립지의 포화, 전자 폐기물의 급증, 자원 고갈 문제 등은 이미 전 세계가 직면한 심각한 환경 위기입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 같은 전자제품은 납, 카드뮴 같은 유해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무분별하게 버릴 경우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킵니다. 그 결과 ‘버리는 문화’는 단순히 개인의 소비 습관을 넘어 지구 환경 전체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들어 다시 ‘수리 문화’의 필요성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수리 권리(Right to Repair)’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분해하고 고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를 통해 불필요한 폐기물을 줄이고, 자원의 순환을 촉진하려는 것입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제조사에게 부품 공급과 수리 매뉴얼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마련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수리 카페’ 같은 작은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고장 난 가전제품이나 자전거, 가방 등을 들고 와 자원봉사자와 함께 고쳐 쓰는 공간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수리하는 것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교류하며 공동체적인 가치를 되찾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의 발전을 활용하되, 지속 가능한 소비를 고민해야 합니다. 수리 가능한 제품을 선택하고, 제조사에게 책임을 요구하며, ‘고쳐 쓰는 것의 가치를 되살리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수리 문화’는 단순한 낡은 습관이 아니라, 지구의 미래를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은 곧 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지키며, 우리 스스로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길입니다. 다시 ‘수리 문화’를 회복하는 일은 단순히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한 새로운 도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