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스마트폰 알림음과 배달 앱 소리가 골목을 채우기 전, 오래된 동네에는 독특한 리듬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엿장수의 방망이 소리다. 두꺼운 쇠망치로 엿판을 두드리며 내는 ‘땅땅땅’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는 군것질거리를 의미하는 신호였고, 어른들에게는 한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 같은 울림이었다. 오늘은 사라져가는 직업 중 골목마다 울려퍼지던 소리의 기억이 생각나는 동네 엿장수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골목을 울리던 방망이 소리와 아이들의 설렘
엿장수는 커다란 리어카나 손수레에 전통 엿과 강정을 싣고 동네 구석구석을 돌았다. 그들의 손에는 늘 쇠망치가 들려 있었고, 엿을 두드리며 내는 일정한 소리가 곧 광고이자 호객 수단이었다. 방송이나 전단지가 귀했던 시절, 단순한 리듬만으로도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뛰어나와 몇 푼 쥐어주며 엿을 사고, 때로는 집에 있던 고철이나 헌솥을 가져와 바꾸기도 했다. 엿은 단순히 단맛을 파는 음식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 사이의 교류를 만들어내는 매개체였다.
어느 골목에서든 울려 퍼졌던 그 소리는, 지금 생각해보면 도시의 배경음악 같은 것이었다. 자동차 경적이나 오토바이 소음과는 달리, 엿장수의 망치 소리는 기다림과 설렘을 담고 있었다. 그 덕분에 골목은 단순히 생활의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가 쌓이는 무대가 되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 크게 퍼져 나갔다.
엿과 고물 교환, 생활 속 경제와 놀이의 만남
엿장수의 역할은 단순히 군것질을 파는 장사꾼을 넘어섰다. 그들은 흔히 ‘고물상 겸 장사꾼’이었다. 낡은 놋그릇, 고장 난 냄비, 쓰지 않는 철물들을 가져오면 그 무게에 따라 엿으로 바꿔주었다. 당시에는 재활용이나 환경 보호라는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지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순환경제가 이루어졌던 셈이다.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일종의 놀이였다. 집안 구석을 뒤져 못 쓰는 물건을 찾아내고, 그것을 몰래 들고 나와 엿으로 바꾸는 과정 자체가 모험처럼 느껴졌다. 엿 한 조각을 손에 쥐었을 때의 달콤함은 단순히 설탕의 맛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모험의 보상 같은 것이었다.
어른들에게도 엿장수는 생활에 필요한 존재였다. 못 쓰는 고물을 처리하면서도 엿이나 강정을 받아 집안의 간식거리로 삼을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다. 또한 엿은 단순히 단맛을 즐기는 간식을 넘어, 소화제로 여겨지기도 했다. 특히 나이 든 이들은 “엿이 속을 달래준다”라며 식후에 조금씩 잘라 먹기도 했다.
이렇게 엿장수는 아이들과 어른, 놀이와 생활, 군것질과 경제를 동시에 잇는 다리 같은 역할을 했다. 골목마다 울려 퍼진 소리는 단순히 장사꾼의 신호가 아니라, 생활의 한 리듬이자 공동체의 순환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다.
사라진 소리, 그리고 남겨진 추억
도시가 고층 아파트와 대형마트로 재편되면서 엿장수의 모습은 점차 사라졌다. 아이들은 더 이상 골목에서 뛰어놀지 않고, 집 안에서 스마트폰을 붙잡는다. 엿장수가 내던 망치 소리는 도시의 소음에 묻히거나, 아예 자취를 감췄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 소리를 ‘추억 속 풍경’으로만 기억하게 되었다.
그러나 엿장수의 소리는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생활 문화를 상징하는 소리이자, 공동체적 삶의 증거다. 오늘날에도 일부 지역의 전통 행사나 장터에서 엿을 두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볼거리가 되고, 어른들에게는 잊었던 향수가 된다.
엿장수의 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는 참 단순했지만 따뜻했다.” 사실 엿의 맛이 특별히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달콤한 조각 안에는 이웃과 나누던 정, 작은 모험의 즐거움,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던 온기가 녹아 있었다. 그래서 그 소리가 사라진 지금, 사람들은 더욱 그리워한다.
사라져가는 전통을 모두 되살릴 수는 없겠지만, 그 기억을 글이나 이야기로 남기는 것은 의미가 있다.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엿장수의 방망이 소리는 단순히 옛날 장사의 수단이 아니라, 한 세대의 삶을 지탱했던 문화적 배경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기억하는 한, 우리의 마음속 골목은 여전히 따뜻하게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