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냉장고와 냉동고가 생활의 기본으로 자리 잡은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은 사라져 가는 직업 중 냉장고 보급 전 얼음산업에 대하여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여름을 견디는 지혜, 얼음과 함께한 생활
여름철에는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식재료는 냉장·냉동 보관해 오래도록 신선함을 유지한다. 그러나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냉장고는 일부 부유층만이 사용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냉장고가 아닌 ‘얼음’에 의존하여 더운 여름을 버티며 생활을 이어갔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 보관은 가장 큰 과제였다. 여름철에는 조금만 방심해도 음식이 상하기 쉬웠고, 식중독과 같은 질병의 위험도 높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얼음을 구해 항아리나 보관함 속에 넣어 음식을 차갑게 유지하려 했다. 얼음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운 생활 필수품이었다.
그 시절 여름철 거리 풍경에는 ‘빙장 배달부’가 빠지지 않았다. 빙장(氷場)은 얼음을 저장하거나 만들어 공급하는 곳이었는데, 겨울에 강이나 호수에서 채취한 얼음을 톱밥으로 덮어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에 판매하기도 하고, 인공 얼음을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큰 얼음 덩어리는 손수레나 지게를 이용해 가정집, 음식점, 다방 등으로 배달되었다.
가정에서는 얼음을 작은 조각으로 쪼개 ‘얼음통’에 넣어 국수를 시원하게 말아 먹거나, 수박을 담가 차갑게 즐겼다. 다방에서는 얼음을 갈아 시원한 빙수를 만들었고, 술집에서는 얼음을 띄운 맥주와 소주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한여름 아이들은 배달부 아저씨가 던져준 얼음 조각을 입에 물고 달콤한 시원함을 느끼며 뛰어다니곤 했다. 지금은 당연한 듯 누리는 차가움이, 당시에는 귀하고 특별한 여름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얼음 산업의 황금기와 배달부들의 노동
냉장고가 보급되기 전까지 얼음 산업은 여름철 도시 경제의 중요한 축이었다. 192030년대 근대 도시가 형성되면서 얼음을 대량으로 생산·저장하는 빙장이 등장했고, 특히 195060년대에는 여름철 필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얼음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공급되었다. 하나는 겨울철 자연에서 채취한 ‘자연빙’을 저장해 두었다가 판매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얼음을 기계로 인공 생산하는 ‘인빙(人氷)’ 방식이었다. 특히 도시에서는 전기와 기계 설비가 보급되면서 인공 얼음 생산이 활발해졌고, 이를 각 가정과 상점에 배달하는 유통망이 성장했다.
빙장 배달부는 얼음 산업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그들은 이른 새벽부터 빙장 창고에서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꺼내 지게나 손수레에 실어 나르며 하루를 시작했다. 보통 한 덩어리의 얼음은 50kg이 넘었고, 배달하는 과정에서 땀과 얼음물이 뒤섞여 온몸이 흠뻑 젖었다. 여름철 골목길에서 얼음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 다니는 배달부들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당시 얼음 배달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일이었다. 얼음을 조금이라도 더 녹지 않게 배달하기 위해 속도를 다투었고, 무거운 얼음을 이고 언덕과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아이들에게는 얼음을 조금씩 나눠주며 인심을 베풀기도 했는데, 이런 장면은 여름날의 정겨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얼음은 도시인들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고, 여름이 다가올수록 빙장 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얼음은 음식점의 필수품이자 가정의 생필품이었으며, 여름철 소비 문화와 직결된 대표적인 산업이었다.
냉장고 보급과 함께 사라진 얼음 산업
그러나 얼음 산업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겪으면서, 가정용 냉장고
가 점차 보급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고가라 일부 부유층만이 사용할 수 있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는 중산층 가정까지 빠르게 확산되었다.
냉장고의 보급은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더 이상 매일 얼음을 배달받을 필요가 없었고, 집에서 언제든 얼음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음식 보관도 훨씬 오래도록 가능해졌으며, 여름철 더위를 이기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이 변화는 곧 얼음 산업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빙장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자연빙 채취도 의미를 잃었다. 얼음 배달부라는 직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과거의 여름 풍경은 점차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얼음 산업이 남긴 흔적은 여전히 크다. 당시의 얼음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여름철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 필수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얼음 배달부들의 땀방울 덕분에 사람들은 시원한 음료를 즐기고,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지킬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냉장고의 편리함도, 결국 그 이전 세대가 경험했던 불편함과 얼음 산업의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날 얼음은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가정에서도 마음껏 만들어 쓸 수 있다. 하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얼음은 여름을 견디게 해주는 소중한 자원이었으며,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이루던 존재였다. 냉장고의 보급은 얼음 산업의 종말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우리 생활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흥망성쇠의 역사는 곧 한국 근현대 생활사 속에 담긴 변화와 발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