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버튼 하나로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냉장고 문만 열면 얼음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냉장고는 고가의 사치품이었고, 대부분의 가정은 여름철 더위를 견디기 위해 자연에서 채취하거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얼음에 의존해야 했다. 그 시절 여름의 필수 풍경 중 하나가 바로 ‘빙장 배달부’였다. 오늘은 사라져 가는 직업 중 빙장 배달부에 대하여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얼음이 만든 여름 풍경
빙장은 오늘날로 치면 얼음을 대량으로 만들어 공급하는 업체를 의미했다. 겨울철 강이나 호수에서 채취한 얼음을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에 꺼내 팔거나, 인공적으로 얼음을 만들어 도시 곳곳에 공급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커다란 얼음 덩어리는 가정집이나 음식점으로 배달되었고,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이 바로 ‘빙장 배달부’였다.
빙장 배달부는 대부분 건장한 청년들이었다. 당시 얼음은 작은 조각이 아니라 한 덩어리에 수십 킬로그램이 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것을 지게나 손수레에 싣고 나르는 일은 상당한 체력과 인내심을 요구했다. 땡볕 아래 땀을 흘리며 얼음을 배달하는 모습은 여름철 골목의 단골 풍경이었다. 아이들은 빙장 배달부가 지나가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고, 때로는 얼음을 조금 얻어 쪽쪽 빨아먹으며 더위를 달래기도 했다.
그 시절 얼음은 단순히 시원함을 주는 도구를 넘어, 여름을 버티게 해주는 생필품이었다. 국수나 냉면을 시원하게 말아 먹고, 수박을 차갑게 보관하며, 찬 음료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빙장 덕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상이지만, 당시에는 빙장 배달부가 있어야 가능한 호사였다.
무거운 얼음을 나르는 고된 노동
빙장 배달부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 빙장 창고에 모여 얼음 덩어리를 꺼내 지게에 짊어지고 도시 곳곳으로 흩어졌다. 얼음을 나를 때는 마대나 톱밥으로 덮어 녹는 속도를 늦추었지만, 뜨거운 햇볕과 높은 기온 탓에 시간이 갈수록 얼음은 서서히 녹아내렸다. 배달부는 땀에 젖은 옷과 함께 녹아내린 얼음물에 뒤범벅이 되는 일이 잦았다.
무게도 문제였다. 보통 한 덩어리의 얼음은 50kg을 훌쩍 넘겼다. 이 무거운 얼음을 지게에 지고 골목길과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상상만 해도 힘겹다. 당시 도시의 길은 지금처럼 잘 포장되어 있지 않았고, 경사진 언덕이나 좁은 골목이 많았다. 빙장 배달부는 얼음을 지게에 올려 짊어지고, 미끄럽게 젖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 다녔다. 조금만 방심하면 얼음을 떨어뜨리거나 넘어질 위험도 있었다.
또한 배달 시간은 촉박했다. 손님들은 하루라도 빨리 시원한 얼음을 받기를 원했고, 얼음은 녹아내리기 전에 전달해야 했다. 배달부들은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쉼 없이 뛰어다니며 배달을 이어갔다. 그렇게 온몸에 땀과 얼음물이 흘러내렸지만,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그들은 묵묵히 일을 해냈다.
빙장 배달부의 수입은 넉넉하지 않았다. 당시 노동 강도에 비해 보수는 낮은 편이었지만, 도시 서민들에게는 꼭 필요한 직업이었기에 많은 청년들이 이 일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땀방울 덕분에 여름철 사람들은 시원한 한 모금의 청량함을 누릴 수 있었다.
사라진 직업, 그러나 남아 있는 기억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빙장 배달부의 일자리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1960~70년대에 들어서 가정용 냉장고가 대중화되자 더 이상 얼음을 배달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빙장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자연스럽게 빙장 배달부라는 직업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그들의 흔적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특히 40~50대 이상 세대에게 빙장 배달부는 어린 시절 여름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지게에 얼음을 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골목을 오르던 모습, 아이들에게 얼음 조각을 조금씩 떼어주던 따뜻한 인심, 그리고 그 얼음을 담아 만든 시원한 빙수가 아직도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빙장 배달부의 노동은 매우 고되고 비효율적인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그들은 단순히 얼음을 배달하는 인부가 아니었다. 더운 여름을 견디게 해주는 은인 같은 존재였고, 여름날의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준 주인공이었다.
오늘날에는 냉장고와 에어컨이 당연시되면서, 얼음은 더 이상 귀한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한 일상 뒤에는 과거의 수많은 땀방울과 노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빙장 배달부는 사라진 직업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여름의 추억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